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멸치똥 - 복효근 <1일 1편 시(詩) 필사 하기>

물빛향기 2020. 5. 28. 21:40

멸치 똥         복효근

 

똥이라 부르지 말자

그 넓은 바다에서

집채만한 고래와 상어와

때깔도 좋은 열대어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 이리저리 눈치 보며

똥 빠지게 피해 다녔으니 똥인들 남아 있겠느냐

게다가 그물에 걸리어 세상 버릴 적에 똥마저 버렸을 터이니

못처럼 짧게 야윈 몸속에

박힌 이것을 똥이라 하지 말자

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잡아먹은 적 없이 잡아먹혀서

어느 목숨에 빚진 적도 없으니

똥이라 해서 구리겠느냐

국물 우려낼 땐 이것을 발라내지도 않고

통째로 물에 넣으면서

멸치도 생선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적마다 까맣게 타들어갔을

목숨 가진 것의 배알이다

배알도 없는 놈이라면

그 똥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들어낸 자리

길고 가느다란 한 줄기 뼈가 있겠느냐

밸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창시도 없이

똥만 그득한 세상을 향하여

그래도 멸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등뼈 곧추세우며

누누 천년 지켜온 배알이다

 

    - 시집 『마늘촛불』 (애지, 2009)

===

멸치

똥이라 부르지 말라.
넓은 바다에서 고래와 상어에게

 

또 때깔 좋은 열대어 사이에서
주눅들지 않고
버텨 온 세월,,,
그러나 그물에 걸려서
우리들의 밥상에 올라온 멸치.
너도 생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통째로 국물 우려낼 땐
희생하는 멸치
오늘도 우리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멸치.
오늘도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