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차 에세이 필사하기 <소설가의 일, 김연수>
♣ 필사 본문
절망보다 중요한 건 절망의 표정 및 몸짓, 그리고 절망 이후의 행동
예전에 한국예술 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서 잠시 소설 창작을 가르칠 때, 신입생 선발을 위한 실기시험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출제한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풀기에는 어려운 문제이나, 학생들이 절망에 대해서 얼마나 숙고했는지 이해하기 위한 문제였다. 여기에 그 문제를 옮겨놓을 테니까 다들 풀어보시길.
문제: 여기 결혼 십 주년을 꼭 일주일 앞두고, 미국의 장인과 장모를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아내와 두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서 공항까지 자동차를 몰고 가는 남자가 있다. 아침에 어떤 문제로 그들에게 짜증을 내느라 집에서 나서는 시간이 늦었고, 그는 미안한 마음에 허둥지둥 자동차를 몰아서 겨우 공항에 도착한다. 그들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미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이제 이 남자가 자신이 떨어진 이 어둡고 습하고 음침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할 만한 행동을 떠올려보라. 가능하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행동일 것.
(출제에 도움을 주신 뉴욕의 폴 오스터 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누가 좀 전해주세요.)
- p.148 (소설가의 일, 김연수)
■ 문장 분석
- 작가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칠 때, 신입생 선발 실기시험에서 낸 문제입니다.
- ‘짧은 시간 안에 풀기에는 어려운 문제이나, 학생들이 절망에 대해서 얼마나 숙고했는지 이해하기 위한 문제였다’며 출제의도를 밝힙니다.
- ‘여기 결혼 십 주년을 꼭 일주일 앞두고’ ‘아내와 두 아들을 배웅’ ‘짜증을 내느라 집에서 나서는 시간이 늦었고’ ‘미안한 마음에 허둥지둥 자동차를 몰아서 겨우 공항에 도착’ ‘그들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미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이런 문장을 눈여겨보면서 문제를 풀면 좋겠습니다.
- ‘이제 이 남자가 자신이 떨어진 이 어둡고 습하고 음침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할 만한 행동을 떠올려보라.’ 실기시험 문제입니다.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만한 행동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 ‘가능하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행동일 것’ 이 부분은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자유롭게 생각하세요.
-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한 행동을 생각하며 뒷 문장 이어쓰기를 해봅니다. (5-10줄 이내)
* 뒷 문장 이어서 쓰기
그리고 그날 저녁,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는(OO는) ......
♣ 필사본
단상)
♣ 뒷 문장 이어 쓰기
그리고 그날 저녁,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는 온몸이 얼어붙는 공포가 밀려온다. 어둡고 습한 음침한 곳에 빠져드는 그런 공포가 찾아온다. 절망스럽지만 눈물도 안 나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우선 사고 대책 본부를 찾아간다. 신원확인 부터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그는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게, 하나님께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절망하고, 의기소침한 그에게 메마른 감정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그 순간 아내와 아들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여보!”
그는 꿈인가, 생시인가? 어리둥절한다.
“어떻게 된 일이야?”
“응, 아침에 당신과 다툼으로 인해 사과도 없이 비행기를 탈 수 없더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어?”
“아이들을 데리고, 쇼핑도 하고 이곳저곳 다니기도 하고 공원에서 놀다가,,,”
아내와 아들은 탑승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탑승하기 전에, 아내는 남편과 아침에 다툼을 인해 마음이 편치 않아서, 비행기를 타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항에서 천천히 쇼핑하며, 공원에서 놀다가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현실의 삶에서는 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말하지만, 소설에서는 감추기 위해서 말한다. 대신에 그는 자신이 절망한다는 사실을 표정 및 몸짓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어떤 표정 및 몸짓으로 무슨 행동을 할 것인가? 어쩌면 소설가가 하는 일이란 바로 이 표정 및 몸짓과 행동을 알아내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절망의 표정 및 몸짓, 그리고 절망 이후의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히 소설가라고 말할 수 있다. - p.147 (소설가의 일,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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