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차 에세이 필사하기 - 문장, 사랑하지 않으면 뻔 해지고 뻔 해지면 추잡해지는 것 <소설가의 일, 김연수>
♣ 본문 필사
제3부 문장과 시점
문장, 사랑하지 않으면 뻔해지고 뻔해지면 추잡해지는 것.
내가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한 건 문장들이었다. 다음은 은밀한 곳의 멋스러움을 서술한 부분이다.
또한 겨울밤 아주 추울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불속에 파묻혀서, 저 멀리서 그윽하게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는 것도 정취가 있다. 그런 때면 닭이 처음에는 부리를 날개 속에 처박고 울어서 그 울음소리가 아주 멀리 들리다가, 날이 밝아옴에 따라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밤에 이불을 덮고 누워서 종소리를 듣고 또 닭소리를 듣는 걸 묘사했을 뿐인데, 나는 이 여자가 어떤 남자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까워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밤을 꼬박 새우고 깨어 있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다. 손가락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틈엔가 만월이 두 눈에 들어오는 놀라운 경험 같달까.
운치 있는 벌레에 대해서 쓴 글도 눈에 보일 듯 생생하다.
벌레는 방울벌레, 쓰르라미, 나비, 청귀뚜라미, 귀뚜라미, 여치, 해초 벌레, 하루살이, 반딧불이가 좋다. 도롱이벌레는 정말 딱한 벌레다. 귀신이 낳았으니 제 부모가 ‘부모를 닮아 이것도 성질이 무서울 것이다’ 생각하고 넝마를 입혀 “곧 가을바람이 불면 데리어 올 테니 기다려라”하고 도망친 것도 모르고, 바람 소리가 들리면 “아빠, 아빠”하고 청승맞게 우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계절의 멋을 논한 제1단은 이렇게 전체를 모두 베낄 정도로 아름답다.
봄은 동틀 무렵. 산 능선이 점점 하얗게 변하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그 위로 보랏빛 구름이 가늘게 떠 있는 풍경이 멋있다.
여름은 밤. 달이 뜨면 더할나위없이 좋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여기저기에서 날아다니는 광경은 보기 좋다. 반딧불이가 달랑 한 마리나 두 마리 희미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것도 운치 있다. 비 오는 밤도 좋다.
가을은 해질녘. 석양이 비추고 산봉우리가 가깝게 보일 때 까마귀가 둥지를 향해 세 마리나 네 마리, 아니면 두 마리씩 떼지어 날아가는 광경에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러기가 줄을 지어 저 멀리로 날아가는 풍경은 한층 더 정취가 있다. 해가 진 후 바람 소리나 벌레 소리나 들려오는 것도 기분 좋다.
겨울은 새벽녘. 눈이 내리면 더없이 좋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것도 멋있다. 아주 추운 날 급하게 피운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 나름대로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때 숯을 뜨겁게 피우지 않으면 화로 속이 금방 흰 재로 변해버려 좋지 않다. - p.169~171 <소설가의 일, 김연수>
■ 문장 분석
- 『마쿠라노소시』 세이쇼나곤이라는 11세기 일본의 고위 궁녀가 쓴 수필집.
- 책꽂이에 좋아하는 책을 꽂는 자리가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단숨에 비소설 쪽 4위 자리에 꽂히게 되었다고 하네요. 1, 2, 3위가 궁금해집니다.
- ‘내가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한 건 문장들이었다.’며 ‘은밀한 곳의 멋스러움을 서술한 부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또한 겨울밤 아주 추울 때 사랑하는 사람과(...) 날이 밝아옴에 따라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은밀한 곳의 멋스러움 중 하나입니다.
- ‘손가락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틈엔가 만월이 두 눈에 들어오는 놀라운 경험 같달까.’라며 문장에 반한 소회를 서술합니다.
- ‘운치 있는 벌레에 대해서 쓴 글도 눈에 보일 듯 생생하다.’ 눈에 보일 듯 생생한 문장을 곱씹어봅시다.
-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계절의 멋을 논한 제1단은 이렇게 전체를 모두 베낄 정도로 아름답다.’ 필사하고 싶을 정도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 봄은 동틀 무렵/ 여름은 밤/ 가을은 해질녘/ 겨울은 새벽녘의 풍경이 멋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낮은 없네요.
- 내가 느끼는 사계절의 멋을 한 단락 정도 적어도 좋겠습니다.
♣ 필사본
♣ 단상
◈ 내가 느끼는 사계절의 멋
봄 : 산속에 꽃 필 때 - 온 힘을 다해 예쁜 꽃들을 피우는 계절이다. 특히 산속에 진달래는 봄 소리만 들어도 놀라, 추운 이른 봄에 제일 먼저 야산에 꽃을 피운다.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는 산 능선에 구름이 떠 있는 풍경이 아름답다.
여름 : 오후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올 때 - 해는 반짝 구름 사이로 보이다가 비가 내린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펑펑 우는 사람처럼, 기분 좋은 파란 하늘에 금세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린다. 오색 빛깔의 무지갯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 오후가 좋다.
가을 : 밤하늘 - 정든 고향에서 별들이 내려앉은 잔잔한 호수 같은 강에 비친 청명한 달이 생각난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금빛 같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고, 풀벌레 우는 강변에 앉아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가을 밤하늘의 별은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며, 풀벌레 우는 가을밤은 너무나 좋다.
겨울 : 눈 온 뒤 - 눈 속으로 걸어 갈 때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내 인생에 겨울 햇볕 같은 존재는 누구인지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든 겨울 햇볕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겨울 햇볕은 마냥 따뜻하게 비추는 아늑하고 마음의 위로가 된다. 그리고 나에겐 “엄마”가 그런 겨울햇볕같은 존재인데,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그런 존재일까?
◈ 보너스
마찬가지로 소설가는 문장만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앉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내가 쓸 내용 같은 건 없다고. 오직 문장뿐이라고. 그것도 한 번에 하나의 문장뿐이라고. 내용이야 어떻든 쾌감을 주는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을 뿐이라고. 끝내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소설가는 내용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장을 고치는 사람이다. 잘 고치는 사람, 그러니까 본인이 만족할 정도로 충분하게 많이……. 남들보다 더 많이 고치는 사람. 그게 다다.(그러니 술자리에서 소설가가 말이 많다고 너무 미워하지 말기를.) - p.193 <소설가의 일.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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