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으며 졸기 - 김기택
잠이 깨는 순간마다
얼핏 책상 앞에서 졸고 있는 내가 보였다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코고는 소리를 얼른 멈추고 있었다
소매로 입가의 침자국을 닦고 있었다
졸음을 쫓아내려고 머리를 흔들고
열심히 눈을 비비고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글자에 초점을 맞춘 나는
더 이상 졸지 않고 책에만 집중하였다는
생각 속에서 허겁지겁 빠져나와
침 닦으며 눈 비비며 다시 잠 깨는 나를 보았다
이제야말로 깨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머리통은 또 한쪽으로 꺾이어 있었다
분명히 멈추었다고 생각했던 코고는 소리를
다시 멈추고 있었다
부릅떴다는 생각 속에서 어느새 풀려버린 눈을
다시 번쩍 뜨고 있었다
또렷하게 보였던 글자들이
부랴부랴 허공에서 책 속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정신 차리자고 기지개를 하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본 다음
자세를 고치고 마음을 다잡아 글에 집중하였다는
생각 속에서 깨어 침을 닦고 있는 나를
꺾인 고개를 얼른 세우고 있는 나를
굳게 붙어버린 눈을 뜨고 있는 나는
잠시 후 다시 보고야 말았다
책 보는걸 아예 포기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기다렸다는 듯 단내 나는 잠이 한꺼번에 밀려와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는 생각 하나가
잠 속에서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 시집<껌>(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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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을 편도 56분 거리를 책과 할 때가 많다.
오늘 시와 같이 책을 읽다가 졸면서 볼 때가 있다.
졸다가 책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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