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1일차 ‘미션. 김진영처럼 일기 쓰기’ - '익어가는 인생'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한겨레>
♣ 필사본문
88 .
일찍 일어나 병원 갈 채비를 한다. 필요한 서류들을 가방에 넣다가 나도 모르게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넣는다. 슈베르트 평전과 뮐러의 시 <겨울 나그네>. 왈칵 솟으려는 눈물을 겨우 참는다. 그래 나는 깊이 병들어도 사랑의 주체다. 울 것 없다. 그러면 됐으니까.
112 .
시술의 아침. 병원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다. 커피가 달고 깊다. 길 건너 고궁의 지붕들, 그 너머 숲들, 그 너머 하늘, 모두가 아름답다. 성스럽도록 아름답다. 파란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가 떠난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계단을 오른다. 모두가 건강하고 밝고 가벼운 걸음이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미처 알지 못하리라. 나는 이제 그 세상과 삶의 본래적 축복을 안다. 그것들을 온몸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세상으로 나는 복귀할 것이다. 거기에서 사랑하고 행복할 것이다. 오늘이 그 첫날이고 지금이 그 아침이다.
207 .
주말 오후 카페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낸다. 한 곳에서 중년의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를 즐긴다. 가끔씩 섹스라는 단어가 건너온다. 저편 원탁에는 남자들이 모여서 정치 얘기를 한다. 모두들 등산복을 입었다. 다른 곳 테이블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자주 건너온다. 나는 그냥 거리 풍경을 바라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오후의 햇빛, 부드러운 바람, 달리는 자동차, 자전거 타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무의미의 시간. 그냥 흘러가는 시간. 순간도 영원도 아닌 어쩌면 그 모두인 저무는 휴일 오후의 시간. 생이 농익어가는 셀러브레이션의 시간. 뫼르소의 시간. 니체의 시간— 아 여기서 더 무엇이 필요한가. - p.106,132,247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한겨레>
<김진영처럼 쓰기>
- 네 번째 미션은 ‘김진영처럼 쓰기’인데 번호를 매겨 (# 1 # 2 # 3) 일상의 단상이나 일기를 쓰시면 됩니다.
- # 번호는 1, 2, 3번까지만 매겨주세요.
- # 번호마다 글의 분량은 짧으면 좋겠습니다. (3-5줄을 넘기지 않습니다.)
- # 번호마다 글의 연결성 관계없으니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 미션이 의무는 아닙니다. 쓰고 싶은 샘들만 쓰시면 됩니다.
- 필사하실 샘은 예시문을 필사하시면 됩니다.
- 에세이(일기) 내용은 그동안 필사하신 내용을 참고해 써보세요.
♣ 필사하기
요약과 미션 단상)
=== 익어가는 인생
- 나는 깊이 병들어도 사랑의 주체다.
- 모두가 건강하고 밝고 가벼운 걸음이다.
- 그들은 세상의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미처 알지 못하리라.
- 거기에서 사랑하고 행복할 것이다.
- 나는 그냥 거리 풍경을 바라본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무의미의 시간. 그냥 흘러가는 시간.
- 생이 농익어가는 셀러브레이션의 시간.
# 1. 병원 방문
오후 늦게 병원 갈 채비를 한다. 허리와 무릎이 아파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병원을 찾아간다. 지갑을 챙기고, 가는 동안 읽을 책을 가방에 넣는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빌헬름 뮐러의 시, ‘보리수’를 응얼거리면서 나간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 2. 휴가 후 출근
휴가를 끝내고 출근하는 아침 지하철. 토요일 아침(8월 1일)에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자판기 커피가 달고 깊다. 반대편에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이 들어온다. 휴가기간과 주말 아침이라서 그런가! 붐비지는 않는다. 모두가 건강하고 마스크를 하고 있지만, 가벼운 걸음으로 지하철을 탄다. 각자의 가는 곳은 달라도 한 공간에서 잠시나마 함께 한다. 각자의 세상에서 사랑하고 행복할 것이다.
# 3. 익어가는 인생
비가 오다가 그쳤다가 하는 휴일. 방에서 비 오는 창문 밖을 본다. 뉴스에서는 시간 시간마다. 장맛비로 인해 피해 뉴스가 나온다. 자동차 잠기고, 집이 잠기고, 사람이 실종되는 뉴스를 접하면서 그냥 거리 풍경을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바람이 조금씩 불면서, 비가 내리고, 빗속을 달리는 자동차, 빗길에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시간은 흘러간다. 흐렸지만 저무는 휴일 오후 시간. 나의 인생도 익어가는 중이다. 더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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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 빌헬름 뮐러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서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보리수 껍질에다
사랑의 말 새겨 넣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그곳을 찾았네.
나 오늘 이 깊은 밤에도
그곳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두 눈을 꼭 감아버렸네.
나뭇가지들이 살랑거리면서,
꼭 나를 부르는 것 같았네
<친구여, 내게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아라!>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세차게 때렸네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돌아보지 않았네.
이제 그곳에서 멀어진 지
벌써 한참이 되었네
그래도 여전히 속삭이는 소리 들리네.
<친구여,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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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에 ‘보리수’
성문 앞 우물가에 보리수 한 그루 서 있네.
나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많은 단꿈을 꾸곤 했네.
나는 껍질에 새겼지 수많은 사랑의 말들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 말들이 나를 그리로 이끌었네.
나 오늘도 그 나무 곁을 지나쳐야 했네. 이 깊은 밤중에,
어둠 속에서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네.
나뭇가지들은 속삭였네, 마치 나를 부르듯이,
내게로 오라 친구야, 여기서 너의 안식을 찾으리!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내 얼굴을 세차게 스치네.
모자가 날아가 버렸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네.
이제 나 그곳에서 멀어진 지 오랜 시간 지났지만,
그 속삭임은 여전히 계속 들리네.
너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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