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에세이필사

'환자로 삶을 산다는 것'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한겨레>

물빛향기 2020. 7. 31. 20:48

♣ 4-19일차 에세이 필사 - '환자로 삶을 산다는 것'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한겨레>

 

aladin.kr/p/h2lwb

 

아침의 피아노

미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철학아카데미 대표였던 김진영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이다.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썼던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의 일기 234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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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본문

2018년 7월
209 .
병은 시간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깨어나게 만든다. 환자가 아니었을 때 나는 자주 읽게 되는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야 더 모자라면 어떻고 더 길어지면 또 무슨 대수이냐고만 여겼었다. 그때 유한성의 경계는 멀고 시간은 다만 추상적 길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게 시간은 더는 추상적 길이가 아니다. 그건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질량이고 무게이고 깊이다. 그러니까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시간은 이제 내게 존재 그 자체이다. 

210 .
아침부터 세우가 내린다. 우산을 들고 산책을 한다. 걷다가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잿빛이다. 그래서 더 멀고 더 깊이 보인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흔히 그 사람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얼마나 숭고하고 성스러운가. 하늘로 가는 건 승천이다. 승천은 성자만이 한다. 우리는 마지막에 모두 성자가 되는 걸까.

215 .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다. 소풍을 끝내야 하는 천상병의 아이처럼. 고통을 열정으로 받아들였던 니체처럼.
       - p.249, 250, 255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한겨레>


■ 문장 분석 

- ‘병은 시간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깨어나게 만든다.’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병이 나지 않을 땐 시간도 무한하다고 느끼겠네요. 
- ‘환자가 아니었을 때 나는 자주 읽게 되는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환자가 아닐 때 시간의 관념과 환자일 때 관념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 ‘그때 유한성의 경계는 멀고 시간은 다만 추상적 길이에 지나지 않았다.’ 예전엔 관념적이었던 시간이 지금은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질량이며/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 ‘시간은 이제 내게 존재 그 자체이다.’ 시간의 유한성, 자신에게 시간이란 존재성 등이 느껴지는 문장입니다.
-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흔히 그 사람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한다.’며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습니다.  
- ‘이 말은 얼마나 숭고하고 성스러운가. 하늘로 가는 건 승천이다.’ 죽음을 앞둔 저자에겐 위안이 되는 말이지 않을까 싶어요. 
-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다. 소풍을 끝내야 하는 천상병의 아이처럼. 고통을 열정으로 받아들였던 니체처럼.’ 여러 함축적 의미가 내포된 문장이겠습니다.
-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도와주는 부분이겠네요.

 

♣ 필사하기

 

 

요약과 단상)
=== 환자로 삶을 산다는 것

 

- 병은 시간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깨어나게 만듦.

- 환자가 아니었을 때 나는 자주 읽게 되는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에 대한 이해가 없었음.

- 유한성의 경계는 멀고 시간은 다만 추상적 길이에 지나지 않는다.

- 시간은 이제 내게 존재 그 자체이다.

 

-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흔히 그 사람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한다.

- ‘하늘나라로 갔다라는 말은 얼마나 숭고하고 성스러운가. 하늘로 가는 건 승천이다.

 

-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ㅡ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다.

- 소풍을 끝내야 하는 천상병의 아이처럼. 고통을 열정으로 받아들였던 니체처럼.

 

=== 환자로 삶을 산다는 것은 너무 힘들어 보인다. 올해 5월부터 지금까지 아버지의 갑자기 아픔으로 인해, 환자 모습(20일 입원함)의 아버지를 볼 때 너무나 안쓰럽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제대로 안되고 해서, 멀리서 애처롭게 바라볼 때가 많았다. 퇴원해서 이제 조금씩 회복은 하지만, 약한 몸으로 고통 가운데 환자로 살아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