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에세이필사

'앙상한 가지, 11월의 예찬'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물빛향기 2020. 9. 25. 23:10

♣ 5-22일차  :  '앙상한 가지, 11월의 예찬'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aladin.kr/p/KFoeJ

 

밤이 선생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첫 산문집. 삼십여 년의 세월 속에 발표했던 여러 매체 속 글 가운데 추려 이를 1부와 3부에 나눠 담았고, 그 가운데 2부로는 강운구 구본창 선생의 사진 가운데 이 책의 기��

www.aladin.co.kr

♣ 필사 할 본문

▮ 11월의 예찬

   10월을 노래하는 시들은 많다. 서양의 낭만파 시인들은 「10월의 밤」이라는 시를 다투어 한 편씩 가지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넋을 묻은 고정희의 연시 「비 내리는 가을밤에는」에서도 시인의 가슴을 에이게 했던 가을밤은 거의 언제나 “꽃이삭과 바람만이 이야기를 나누는” 10월의 밤이다. 그에 비하면 11월에 눈길을 주었던 시는 드물다. 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가 아마 여기에 해당할 듯한데, 힘을 잃어버린 햇볕에 대한 아쉬움을 읊고 있을 뿐, 11월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는 노래가 말하듯이 ‘10월의 마지막 밤’을 넘기고 나면 더 이상 이별해야 할 것조차 남아 있지 않을 것일까. 한 가닥 미련마저 사라지고 마는가.

   그렇더라도 11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마른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나면 감춰져 있던 나무들의 깨끗한 등허리가 드러난다. 꽃 피고 녹음 우거졌던 지난 계절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고, 어쩌면 음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 시절의 영화는 사라졌어도 세상을 지탱하는 곧은 형식들은 차가운 바람 속에 남아 있다. 작은 새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때이다. 마른 석류보다 더 작은 새들이 주목의 붉은 열매를 쪼다가 돌배나무의 앙상한 가지로 날아올라간다. 높은 가지에서 관목 숲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릴 때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이제 겨울이 오면 저것들은 어디에 몸 붙이고 살아갈까. 그러나 새들은 욕망도 불안도 떨어져 쌓인 나뭇잎들 속에 벗어두고 한알의 맑은 생명으로만 남은 듯하다.(2004)
       - p.311~312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 문장 분석

- 저자는 10월을 노래하는 시들은 많은데 비해 11월에 눈길을 주는 시는 드물다고 말합니다.
- 그나마 11월을 노래하는 시로  ‘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가 있지만 이 시도 아쉽다고 하네요.
- ‘그렇더라도 11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11월을 노래한 시는 드물지만 11월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 ‘마른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나면 감춰져 있던 나무들의 깨끗한 등허리가 드러난다.’ 시적 은유가 느껴지는 문장입니다.
- ‘꽃 피고 녹음 우거졌던 지난 계절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고, 어쩌면 음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녹음의 계절=혼란스러웠다/ 깨끗한 등허리=음란하게 보이기까지~라는 비유를 썼네요.
- ‘작은 새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때이다.’ 마른 잎사귀들이 떨어지면 새들을 가지에서 만날 수 있겠네요.
- ‘높은 가지에서 관목 숲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져내릴 때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작은 새가 떨어질 때는 낙엽 같다고 말하고 있네요.
- ‘이제 겨울이 오면 저것들은 어디에 몸 붙이고 살아갈까.’ 작은 새들의 겨울살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 필사하기

 

 

출처 : 김성옥
출처 : 김성옥

 

 

요점 정리

 

- 10월을 노래하는 시들은 많다.

- “꽃이삭과 바람만이 이야기를 나누는” 10월의 밤이다.

- 힘을 잃어버린 햇볕에 대한 아쉬움을 읊고 있을 뿐, 11월에 대한 언급은 없다.

- 11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 마른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나면 감춰져 있던 나무들의 깨끗한 등허리가 드러난다.

- 꽃 피고 녹음 우거졌던 지난 계절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고, 어쩌면 음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작은 새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때이다.

- 마른 석류보다 더 작은 새들이 주목의 붉은 열매를 쪼다.

- 높은 가지에서 관목 숲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릴 때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 이제 겨울이 오면 저것들은 어디에 몸 붙이고 살아갈까.

 

단상 - 고정희 시인의 시 비내리는 가을밤에는하고, 보드레르의 가을의 노래를 대신 합니다.

 

○ 비내리는 가을밤에는

                       ㅡ 고정희

 

비내리는 가을밤에는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도착합니다

희고 무겁고 늠연한 나라

소연 절세인이 울연히 거니는 나라

꽃이삭과 바람만이 이야기를 나누는 나라

그런 나라에 도착합니다

 

비내리는 가을밤에는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도착합니다

아홉 개의 강물 위에 아홉개의 달이 뜨고

천종 백합꽃이슬 위에서

맨발의 여자들이 춤추며 날으는

살아 있는 가지마다

앵두빛 입술의 아기들이

엄마, 엄마, 노래하는 나라

갈대꽃술처럼 희망이 흔들리는 나라

그런 나라에 도착합니다

 

비내리는 가을밤에는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도착합니다

구만리에 솟은 그리움과 서러움이

구름다리 대 평원을 만드는 나라

그대 큰 부드러움 그 위에 자욱하여

스물네 대의 거문고 소리로

가슴과 가슴을 두드리는 나라

드디어 즈믄 가람 물굽이에

수련잎 고요히 어룽대는 나라

그런 나라에 도착합니다

 

= = = = = = =

 

가을의 노래           ㅡ 보드레르, 1821~1867

 

이윽고 우리는 가라앉을 것이다, 차디찬 어두움 속으로

너무나도 짧은 우리의 여름날 그 강렬한 밝음이여 안녕

불길한 충격을 전하며 안마당 돌 블록 위에 던져지고 있는

장작불타는 소리를 나는 벌써 듣는다.

 

나는 사랑한다, 네 길다란 눈, 그 초록빛 띤 빛을.

상냥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여, 이제 내게는 모든 것이 흥미 없다.

그 어떤 것도, 그대의 사랑도 침실도 또 난로도

해변에 빛나는 태양보다 낫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도 상냥스러운 사람이여! 역시 나를 사랑해 주오

비록 내가 은혜를 모르는 자요 심술장이라도 내 어머니가 되어 다오.

연인이면서 누이동생이기도 한 사람이여, 비록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하더라도

석양의 상냥스러움, 빛나는 가을의 상냥스러움이 되어 다오.

 

얼마 남지 않는 노력! 무덤이 기다리고 있나니 탐욕스러운 무덤이다!

아아! 당신의 무릎에 이마를 기댄 채 나로 하여금

한껏 잠기게 해 다오. 태양빛 작열하던 여름을 그리워하며

만추의 날 그 상냥스러운 햇빛 속에서!

 

잘 가거라 너무도 짧은 여름날의 강렬한 빛이여!

어제는 여름, 이제는 가을인가!

 

= = = = = = =

 

앙상한 가지         - 김진래

 

11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마른 잎사귀 떨어지고

감춰져 있던 나무들의

깨끗한 등허리를 드러내다

 

꽃 피고 녹음 우거졌던

계절 지나고

이젠 음란하게 보이기까지

행복했던 시절은 사라지고

차가운 바람 속에

작은 새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는 때

마른 석류보다 작은 새들

붉은 열매를 쪼다가

앙상한 가지로 날아오른다

 

높이 가지에서 관목 숲으로 미끄러지듯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겨울이 오면

저 새들은 어디에 몸 붙이고 살아갈까

새들은

욕망과 불안을 쌓인 나뭇잎들 속에

한 알의 맑은 생명으로

남은 듯하다.

 

-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p.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