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불취불귀 不醉不歸 - 허수경
어느 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 시집<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2007(1992)
불취불귀 : 취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는다 / 취할 수 없고 돌아올 수 없다
몽생취사 : ‘몽생취사’는 사전에는 없고, ‘취생몽사’는 있음. 술에 취해 살고 죽는 것. 술에 취하여 지는 동안에 꾸는 꿈속에 살고 죽는다.
취생몽사 : ‘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는다.’ 아무 하는 일 없이 한 평생을 흐리멍텅하게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몽생취생 : 꿈에 취해 살고 취하듯이 죽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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