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불취불귀 不醉不歸 - 허수경

물빛향기 2020. 10. 9. 17:03

201)  불취불귀 不醉不歸        - 허수경

 

어느 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 시집<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2007(1992)

 

 

불취불귀 : 취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는다 / 취할 수 없고 돌아올 수 없다

몽생취사 :몽생취사는 사전에는 없고, ‘취생몽사는 있음. 술에 취해 살고 죽는 것. 술에 취하여 지는 동안에 꾸는 꿈속에 살고 죽는다.

 

취생몽사 :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는다.’ 아무 하는 일 없이 한 평생을 흐리멍텅하게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몽생취생 : 꿈에 취해 살고 취하듯이 죽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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