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서 하 기/읽은책 발췌 2

"사람이 다니는 길" <생각의 좌표, 홍세화, 한겨레>

물빛향기 2021. 2. 13. 13:23

<생각의 좌표> 2일차(p.97~185) : "사람이 다니는 길" <생각의 좌표, 홍세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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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우리 시대의 지식인 홍세화가 그동안 기고한 글과 새로 작성한 글을 모아 엮은 6년만의 신작. 젊은이들에게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의 실마리를 제공하기위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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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97~185 요약 발췌

“우리는 이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 후손에게서 빌린 것이다.” - 생텍쥐페리의 말. - p.103
 
인간은 이제 다른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는 데 멈추지 않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의 몫까지 착취한다. … 마하트마 간디였다. “신은 우리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만 단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킬 수 없다.” - p.103
 
회색의 도시, 콘크리트 건물과 공해로 뿌연 하늘, 한강은 아파트군에 포위당해 빛을 잃었다. - p.109
 
사람의 길은 자동차 길에 밀려났고,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의 길’을 찾지 않는다. - p.109
 
소크라테스는 “배부른 돼지가 되지 말고 헛헛하더라도 인간이 돼라”고 했는데, 나의 부박한 인문적 소양으로는 ‘부자 되세요!’가 소크라테스 말법에 따른 ‘배부른 돼지 되세요!’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른다. - p.109~110
 
흰 것이 흰 채로, 검은 것이 검은 채로 각기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흰 것과 검은 것이 서로 뒤엉키고 버무려진, 영악한 사람들을 위한 회색의 사회 모습이다. - p.114
 
루소는 “자기가 믿는 모든 것을 믿지 않으면 선의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모두에게 냉혹한 저주를 내리는” 불관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p.127

피에르 신부는 “사람을 굳이 둘로 나누어야 한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 p.128
 
볼테르의 말 :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혀야 빛이 난다.”  - p.131

인간은 편함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특히 정의와 진실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요구한다. 일상에서 사회문제, 정의와 진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사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소수가 한국사회에서는 극소수에 가깝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p.144

마르크스는 “지유 언론의 일차적 조건은 산업이 아니어야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자유언론은 생존 수단이 존재 이유를 훼손하면 불가능 하다.”고 했다. - p.148~149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본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도모하겠다며 오늘을 끊임없이 저당 잡히는 일어 벌어진다. - p.158
 
칸트는 “사람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본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진다’는 뜻인데, 역사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귀족은 스스로 의무를 지지 않았다. 스스로 의무를 지지 않으며 지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배하기 위해 의무를 져왔을 뿐이다. - p.164
 
연대를 하지 않아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어도 지배할 수 있으니 계속 뻔뻔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이 없어 견제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68
 
아는 것이 힘이다.

 

2. 회색의 물신 사회 (p.95)

 

귀소본능리란 누군가와 비교하고 경쟁하는 관계로부터 비켜나 있다고 기억되는 곳에 안기고자함이라는 얘기다. - p.98

 

나는 자본주의에 미래가 없다고 믿는다. 자본주의에 미래가 없는 것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인간의 자발적 반란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 때문이라고 전망한다. 인간은 전쟁 수행자들이고 인간 문명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자연의 반란은 지배, 피지배 관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자연 모두의 공멸을 가져온다. 인간은 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싸우기도 하지만 살아남으려고 굴종한다. 인간이 억압과 착취에 굴종하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면 억압과 착취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죽는 대신 굴종을 택한다. 인간의 삶은 모진 것이며 인간에 대한 인간의 억압과 착취는 계속된다. 자연은 인간의 억압과 착취에 굴종하지 않고 스스로 파괴되어 죽는다. 자연이 놀라운 복원력을 앞지른다. - p.102~103

 

우리는 이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 후손에게서 빌린 것이다.” - 생텍쥐페리의 말. - p.103

 

인간은 이제 다른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는 데 멈추지 않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의 몫까지 착취한다. 마하트마 간디였다. “신은 우리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만 단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킬 수 없다.” - p.103

 

, , 옥수수를 발견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힘의 관계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자연의 일부로 자연을 두려워했던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 p.106

 

인간의 탐욕은 오만에 비례하여 더욱더 거칠 것이 없어졌다. 탐욕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의 뿌리이듯이, 다른 인간에 대한 지배와 착취, 그 최종 형태인 전쟁 또한 인간의 탐욕에 뿌리를 두고 있다. - p.107

 

회색의 도시, 콘크리트 건물과 공해로 뿌연 하늘, 한강은 아파트군에 포위당해 빛을 잃었다. - p.109

 

사람의 길은 자동차 길에 밀려났고,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의 길을 찾지 않는다. - p.109

 

소크라테스는 배부른 돼지가 되지 말고 헛헛하더라도 인간이 돼라고 했는데, 나의 부박한 인문적 소양으로는 부자 되세요!’가 소크라테스 말법에 따른 배부른 돼지 되세요!’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른다. - p.109~110

 

이 사회의 욕망의 색인 회색은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다. 그렇지만 때에 따라 희기도 하고 검기도 하다. 회색은 배경이 흰색일 때 검은색이 되고 검은색이 배경일 때 흰색이 된다. 자율성은 자신의 삶에 청백의 도도함을 뿌리내리기 위한 자기 통제다. 자율성이 없고 자기성찰을 하지 않는 회색인들은 올곧음을 배격하며 정직성 앞에서 비겁하다. 주위에 올곧음과 정직성의 청백이 있을 때 자신의 회색이 검정으로 드러난다. - p.112

 

흰 것이 흰 채로, 검은 것이 검은 채로 각기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흰 것과 검은 것이 서로 뒤엉키고 버무려진, 영악한 사람들을 위한 회색의 사회 모습이다. - p.114

 

모든 나들이 만의 행운을 위해 우리모두의 행복을 짓밟으며 살고 있다는 충고는 판도라의 상자에 애당초 희망이 들어 있지 않다는 악담이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끝내 죽더라도 싸우다 지쳐 시어질 때까지는 살아내야 한다. - p.119

 

마름의 속성은 자발적 복종에 있다. 16세기에 열여덟 젊은 나이에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을 쓴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p.124

 

루소 : “자기가 믿는 모든 것을 믿지 않으면 선의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모두에게 냉혹한 저주를 내리는불관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피에르 신부는 사람을 굳이 둘로 나누어야 한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몰상식은 불관용을 낳고 불관용은 제어되지 않을 때 거침없이 폭력으로 나아간다. - p.127~128

 

볼테르의 말 :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혀야 빛이 난다.” 서로 다른 견해가 표현되어 부딪힐 때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견해를, 다르다는 이유로 없애려고 하는 것은 내 견해의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서도 옳지 못한 행위다. - p.131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고 집단 광기에 몸을 맡길 수 있는지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반성적 성찰을 하고 있나. 나와 다른 상대방을 탓할 뿐이거나 기껏해야 전쟁 상황을 탓할 뿐이다. - p.135

 

현대의 군대는 보병 중심이 아니라 기술과 장비 중심이며, 따라서 군대의 인격화를 요구한다. 인격체의 자발성 없이 강제성만으로 담보되는 군사력이란 앞으로는 더욱 보잘것없는 것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편함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특히 정의와 진실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요구한다. 일상에서 사회문제, 정의와 진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사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소수가 한국사회에서는 극소수에 가깝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p.144

 

회색의 사회에서 원칙과 상식은 애당초 불편한 것이다. 한겨레가 생존을 위해 원칙을 훼손하며 회색 신문이 되기를 고려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다. - p.145

 

마르크스는 지유 언론의 일차적 조건은 산업이 아니어야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문이 미디어산업의 하나로 머물 때, 누가 소유하고 있나에 따라 신문의 지향이 규정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자유언론은 생존 수단이 존재 이유를 훼손하면 불가능 하다.”고 했다. - p.148~149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울 수 있다면 탁자 위에 달걀을 깨뜨려 세운 일화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발상의 전환이라고 추켜세워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다만 자연의 섭리에 맞선 인위적인 폭력이었다. - p.154

 

사람은 어차피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 p.156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본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도모하겠다며 오늘을 끊임없이 저당 잡히는 일어 벌어진다. - p.158

 

칸트 : “사람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람은 위하는 존재이지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웃은 서로 위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고 이용하는 존재로 전락한 지 오래다. - p.160

 

우리 사회는 분배를 제도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은 채, 시혜, 온정, 선행의 나눔에만 호소하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다. 나눔이 독차지의 반대말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면, 분배는 성장과 대칭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 p.163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본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진다는 뜻인데, 역사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귀족은 스스로 의무를 지지 않았다. 스스로 의무를 지지 않으며 지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배하기 위해 의무를 져왔을 뿐이다. - p.164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큰 폭의 분배를 제도화한 뒤 나눔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 p.165

 

연대를 하지 않아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어도 지배할 수 있으니 계속 뻔뻔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이 없어 견제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68

 

무상교육제도는 그 자체로 사회적 연대의 구체적 실현이다. 계층간 연대, 즉 횡적 연대의 실현인 동시에, 세대간 연대, 즉 종적 연대의 실현이다. 계층간 연대의 실현이란 소득이 많은 사회구성원이 세금을 더 내 소득이 낮은 집안의 자녀들의 교육자본 형성 비용을 부담해 주는 것을 뜻한다. - p.170

 

조중동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평등주의를 강조한다고 비판하지만, 핀란드의 평등주의는 우리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벌금까지도 소득에 따라 매기니 소득에 대한 세금의 누진 세율이 높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p.174

 

무지와 무관심은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몰상식의 자양분이며 영악한 자들이 뻔뻔하게 군림하는 토양이 된다. 서민 대중은 기득권 세력을 선망하고 가진 자들의 언어에 잘 현혹되고 그들을 지지한다. 뻔뻔한 자들의 기득권 체제는 지속되며 사회 안에서 불평등과 고통, 불행, 폭력은 즐어들지 않는다. - p.182

 

18세기에 볼테르는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런 일이지만,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라는 말로 근대 시민의 자격 요건을 제시하였다. 오늘 한국에서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는 열성을 보이는 집단은 두 부류이다. 하나는 함께 교회에 가자는 사람들이며 다른 하나는 조중동을 구독하라는 사람들이다. - p.183

 

무지와 무관심은 중립이 될 수 없으며, 사회불의보다 사회정의를, 사익보다는 공익을, 몰상식보다는 상식을 원하는 사회구성원이라면 사회 현안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183~184

 

아는 것이 힘이다.” - p.184

 

단상)

   - “사람의 길은 자동차 길에 밀려났고,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의 길을 찾지 않는다.” - p.109

   서울 시내를 다녀보면 사람이 다니는 길보다, 자동차 길이 우선인 곳이 너무 많다. 말은 사람 다니는 곳을 보호하자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