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거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질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ㅡ 시집<농무>(창작과비평, 1971)
===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어릴적 시장 입구나, 공터에서 하는 농무가 생각난다.
이 <농무>란 시(詩)는,
공연이 끝난 후에 텅빈 운동장, 공허한 마음을 술로 달랜다.
농악에 대한 냉담한 반응을 느끼면서
피폐하고 고달픈 농촌의 현실에 울분을 토로하고,
허탈감과 원통함을 안고, 신명난 농무를 추며
삶의 고뇌와 울분을 전달한다.
농무(農舞) : 농촌에서 일을 끝내고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삶의 활력을 찾기 위해서 행해지던 놀이이다.
농민들이, 서민들이 함께 춤을 추면서 어울려 즐기는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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