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놓은 스타킹 - 나희덕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生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그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들고 일어나 물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 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 시집<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작과 비평사, 1994)
=== 양말 대신에 언젠가부터 스타킹을 신고 일하는 여성드릐 삶을 표현한 시인의 모습.
스타킹 올이 풀려 나간 스타킹을 신고, 걸어가는 여인을 보기도 했다.
또한 딸내미들이 외출 했다가 와서는 스타킹을 벗어던질 때,
힘겹게 하루의 고단함을 던져 버린다.
던져버린 스타킹은 몸의 굴곡은 기억하고 있는 오늘,
삶의 굴곡을 새겨 놓았다.
벗어놓은 "스타킹을 물 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온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또한 벗어놓은 스타킹을 물 속에 던져 놓는 딸들을 볼때 힘겹게 달려온 오늘 하루 수고 했네.
'독서이야기 > 익어가는 하루(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집 - 기형도 (0) | 2020.01.13 |
---|---|
농무 - 신경림 (0) | 2020.01.12 |
강아지풀에게 인사 - 나태주 (0) | 2020.01.09 |
서울 대공원 - 황인찬 (0) | 2020.01.08 |
노동의 새벽 - 박노해 (0) | 2020.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