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신영복) 읽고 발췌 - 2
2. 사실과 진실 (p.23 ~ 37)
우리는 두 개의 오래된 세계 인식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詩書畵)가 그것입니다. 흔히 문사철은 이성 훈련 공부, 시서화는 감성 훈련 공부라고 합니다. 문사철은 고전문학, 역사, 철학을 의미합니다. 어느 것이나 언어 ․ 개념 ․ 논리 중심의 문학서사(文學敍事) 양식입니다. - p.24
시는 문사철과 마찬가지로 언어를 사용하지만 시어(詩語)는 그 언어의 개념적 의미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메타 랭귀지(meta language)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도현의 ‘연탄제’는 연탄재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를 아낌없이 불태운 사람의 초상입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에 시인에 관한 설명이 있습니다.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형철은 『몰락의 에티카』에서 시는 가장 개인적인 언어로, 가장 심층적인 세계를 가장 무책임하게 주파하는 장르라고 합니다. 그에게 시는 근본에 있어서 랑그(Langue)가 아니라 파롤(Parole)인 것이지요. 시는 세계를 인식하고 재현하는 상투적인 방식을 전복하고, 상투적인 언어를 전복하고, 상투적인 사유를 전복하고, 가능하다면 세계를 전복하는 것, 이것이 시인의 카타콤(catacomb)이며 그 조직 강령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 p.26
시는 언어를 뛰어넘고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인 셈입니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러해야 합니다.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 - p.30
“시는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려고 할 때가 시가 실패하는 때이다.” (중략) 시는 진정성의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도 감동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화려한 그릇에 담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못합니다. - p.32
공자도 악여정통(樂與政通)이라 했습니다. 음악과 정치는 서로 통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에서 불리는 노래를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중략) 『논어論語』「안연顔淵」편에 ‘초상지풍필언(草上之風必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필언(必偃), 반드시 눕는다. 바람이 불면 청보리 밭의 보리가 눕습니다.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풍화(風化)하기 위해서 시를 수집하고 시로써 백성들에게 다가갑니다. 위정자들이 백성들을 풍화하고 덕화(德化)한다고 하지만 백성들은 반대로 노래로써 풍자(諷刺)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물론 풀이 눕기는 하지만 그건 일시적입니다. 다시 일어섭니다. 그래서 ‘초상지풍필언’에 대구를 달고 있습니다. ‘수지풍중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이라 풍자합니다. 수지(誰知), 누가 알랴, 너는 모르지? 이런 뜻입니다. ‘바람 속(風中)에서도 풀이 다시 일어서는 걸(復立) 너희는 모르지?’라는 대구입니다.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노래합니다. - p.33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듯이 우리의 정서도 그렇습니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의 어느 한 줄기일 뿐입니다. 오래된 정서를 소중하게 이어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심화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래되고 진정성이 무르녹아 있는 시적인 정한을 물려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 p.34
시 한 편이 담고 있는 세계는 매우 큽니다. 시는 굉장히 큰 세계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태백이 읊은 달과 우리가 읊은 달은 스케일이 다릅니다. - p.35
3. 방랑하는 예술가 (p.38 ~ 56)
『시경』의 시는 4언체입니다. 노래로 치면 4분의 4박자 행진곡입니다. 또박또박 걸어가는 보행입니다. 『초사』는 6언체입니다. 6언체는 춤추는 리듬이라고 합니다. 보행은 목표 지점이 존재하고 확실하게 땅을 밟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경』의 사실성입니다. 이에 비해서 춤은 가야 할 목적지가 없습니다. 춤은 어디로 가기 위해서 추는 것이 아닙니다. 춤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목적입니다. p.38
창랑지수청혜(滄浪之水淸兮) 가이탁오영(可以濯吾纓), 창랑지수탁혜(滄浪之水濁兮) 가이탁오족(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명구로 회자되는 이 구절은 「어부」의 결론입니다. 굴원은 초나라의 공족(公族)입니다. 일찍이 초 회왕의 신임을 받았지만 굴원은 두 번, 세 번 유배됩니다. 마지막 유배 때 쓴 시입니다. - p.40
어부와의 논쟁에서 굴원의 자세 역시 고고합니다. “내가 듣기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의 먼지를 멀어서 쓰는 법이고,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의 먼지를 털어서 입는 법이다. 어찌 깨끗한 몸으로 오물을 뒤집어쓴단 말이냐. 차라리 상강에 뛰어들어 고기밥이 되는 게 낫다.” 단호한 자세입니다. 어부가 굴원의 그러한 고고함에 대하여 완이이소(莞爾而笑), 빙그레 웃으면서 고설이거(鼓枻而去), 노(枻) 두드려 박자를 맞추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창랑지수’입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면 되지”입니다. - p.41
생명은 바로 이 DNA가 핵심이고 이 DNA의 운동 원리가 바로 자기 족속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생명의 유일한 원리가 바로 자기 존속입니다. 살아남는 일입니다. 살아남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6
냉정한 자기비판은 일견 비정한 듯하지만 자기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서바이벌의 가능성을 훨씬 높여 줍니다. 적어도 서바이벌에 있어서 자위와는 다른 차원의 대응입니다. 물론 자위와 자기비판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함은 물론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지혜로운 조화가 바로 그러한 담론입니다. - p.48
귀곡자(鬼谷子)의 시론을 소개합니다. ‘귀곡(鬼谷)’이란 이름만 보면 실제 인물이 아닌 것 같지만 귀신이 아니라 실제 인물입니다. (중략) 귀곡자는 “병법은 병사의 배치이고, 시는 언어의 배치이다”라고 했습니다. 병사의 배치가 전투력을 좌우하듯이, 언어의 배치가 설득력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적인 레토릭(rhetoric)과 문법을 중요시합니다.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어』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에서 ‘열(說)’자는 ‘설(說)’자로 쓰고 뜻은 ‘열(說)’로 읽습니다. 귀곡자의 주장은 ‘설(說-)이 열(說)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듣는 상대가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言 )의 배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중략) 귀곡자는 반대로 그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와의 대화가 기쁜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도덕성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어서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귀곡자는 언어를 좋은 그릇에 담아서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성(誠)이라고 했습니다. - p.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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