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플리카 LOVE REPLICA (윤이형 소설) - 9
해설
가망 없는 세계의 사랑
양경언(문학평론가)
그 누구도의 강요도, 그 무엇의 강제도 없이 형성된 저 장면이 빚어내는 감정을 과연 의아하게만 여길 수 있을까. 저들의 다정한 대화를 엿들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의 구분을 위한 경계심은 허물어진다. 기계에도 어김없이 인간과 닮은 감정이 깃들 정도로 테크놀로지가 발전했으니 로봇도 인간처럼 대우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게 아니다. 오히려 저 장면은 오가는 말 속에. 이 둘의 정체성을 따지는 일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배면으로 둔다. 달리 말해 이들의 정체성은 둘 사이에 오가는 말을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 p.343
서로를 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 말고는 두 소년이 수술받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던 딸기의 입장은, 루카의 아버지가 아들의 사랑을 어떻게 납득하고 이해하며 용인할지를 두고 씨름하는 방식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딸기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골몰해 있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있다’는 그 자체로 살아가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결코 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동시에 ‘있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앞에서, 딸기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는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소설은 그러한 딸기를 비난하지도, 두둔하지도 않는다. p.345
「굿바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얼음 속에 재워두고 머릿속에 든 모든 것을 전자뇌에 이식시킨 후 기계의 몸으로 화성에 갈 수 있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때 기계의 몸이 되기로 한 이들이 추구하는 바는 “어떤 생명도 착취하지 않으면서 사는 삶”(54쪽)이었다. - p.348
「러브 레플리카」의 ‘경’은 그러한 문제 상황을 의인화한 존재에 해당할 것이다. 어른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어른들처럼 되어가는 삶을 여생으로 부여받은 아이들(「핍」)은 왜 아닐까. ‘내’가 사라지고 있음에도 세계는 여전히 지속 된다는 것, ‘네’가 없음에도 내가 견뎌야 하는 세상은 그대로라는 것. 그 때문에 ‘내가 사는 이유’를 질문하는 일이 무의미해지고, ‘나’의 죽음마저도 ‘나-자아’의 고유한 일로 보장받지 못함을 아는 것. 이는 윤이형이 이전 소설집에서부터 천착해온 문제의식과 연결되는 상황이자 그녀가 그리는 세계가 근원적으로 품고 있는 공포에 해당한다. - p.349
「핍」에서 그 몫은 ‘핍’에게 맡겨진다.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어른들을 대신해서 세계를 꾸려가야만 하는 아이들을 비추면서 시작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어설프게 역할을 수행하는 아이들은 지금의 세계가 ‘진짜’냐고 자꾸 물으면서도 어쨌든 꾸역꾸역 살아간다. 핍 역시도 그런 아이들 속에서 살아가는, 남겨진 아이 중 하나다. 거리에서 위험에 빠진 ‘얀’을 구한 이후에는 얀과 함께 생활하고, 버려진 아이를 기르기도 하면서 유사 어른의 삶을 이어가는 핍의 이야기는 그러나 마치 순서가 마구 뒤섞여버린 카드처럼 인과 없이, 조금의 개연성도 없이 진행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부모가 사라진 당일, 핍이 하지 못했던 말들은 장막에 싸인 채 소설의 도입부가 아니라 맨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 - p.350
우리는 다시 살고, 다시 죽고, 그러다 결국 없어지겠지만, 너를 만나서 나는 내가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이렇게 이상한 곳에 있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합성해놓은 타인의 회한 같은 게 아니야. 누구의 소망도, 변명도 아니야. 나는 얀이야. 우리 부모님이 낳아주신, 너를 만나 같이 살았던, 얀.(「핍」, 231쪽) - p.351
세계는 쉽게 끝장나지 않는다. 보라. 세대 간, 계급 간, 젠더 간의 갈등이 ‘여전히’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세계는 그를 껴안은 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윤이형은 끝장나버린 세계 이후에 그 자리를 대신하는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라, 끝장나지 않은 세계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 따라서 점점 희박해질지언정 완전히 사라질 수 없을 ‘나’와 ‘네’가 지속되도록 해주는 사랑을 말한다. “함께함being-with이 어리석게 넘쳐흐름” 사랑의 장면들이 잘 밀봉되어 등장할 때, “사회적 지성과 분별 있는 활동을 명문화하는 법”. 그러니까 지금 세계를 지탱하는 제도로서의 법은 중지된다. -p.352
어떻게 그토록 모르는 것이 가능할까. 그 까만 무지에서 당신의 희망이 자라난다. 희망은 좋은 것일까.
나는 아주 천천히 숨을 쉬어본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희망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나는 당신에게
집중하기로 한다.(「굿바이」, 51쪽)
희망은 좋은 것일까? 모른다. ‘희망’이라는 말이 얼마나 순진한지, 이 말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살 만큼 살아본’ 사람은 안다. ‘당할 만큼 당해본’ 사람은 감히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기대가 헛됨을 알 때 밀려올 고통이란 희망이 자라나길 바라는 “무지”만큼이나 적막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다 버리고 싶지 않은 게 또한 희망이지 않은가. 같잖다고 생각하면서, 상투적이라 여기면서, 끝내 놓지 못하는 말이기도 하지 않은가. 희망을 손에서 놓아버리면 살아야 할 이유도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 p.353~354
우리는 ‘인간에게 생명(삶)이란, 사람들 사이에 머문다는 것을 의미하며, 죽음은 사람들 사이에 머물기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던 한나 아렌트의 말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희망’은 의지가 허락되지 않은 채 출발한 인간의 삶이 ‘인간다운’ ‘삶다운’ 정의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다른 말이다. - p.354
작가의 말
"나는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파괴하고, 당신의 꿈과 시간과 기쁨을 희생시켜 내 살과 피로 바꿔놓고는 철면피처럼 계속 같이 있어줘, 라는 말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방은 초라해져가고, 우리는 함께 낡아가며 종종 서로 때문에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습니다." - 윤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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