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과 자두 - 김진래
검푸른 과일을 먹는 기쁨은
그 과일을 식칼로 자르니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도 못 지르고,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초록이 빨강으로
한 번의 칼질로
선명하게 전환된다.
껍질 속에는 새까만 씨앗이
별처럼 박힌 선홍색의 바다
비린 향기가 퍼져나가는 수박
수박은 속이 빨갛고
자두는 껍질이 빨갛다.
다른 과일보다 으뜸으로
에로틱한 요물단지
육향(肉香)을 내는 자두
향기는 퍼지기보다는 찌른다.
껍질을 깎을 필요 없이 통째로 먹는다.
수박과 자두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아간다.
-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p.366~368>(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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