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장석주

물빛향기 2020. 4. 11. 16:17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장석주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 시집<스무 살은 처음입니다>(지혜, 2018)


=== 첫사랑을 잃어 버릴지도 벌써 꽤 많은 시간이 지났네.

그때 보다 더 많은 별자리를 보며,

그때 보다 더 많이 미소짓고, 사랑하는 이에게 더 많이 "사랑해, 행복해!" 라고 말하며,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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