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선운사에서 - 최영미

물빛향기 2020. 4. 27. 21:57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건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 1994, 초판 / 창비, 2015, 개정판)

===  꽃이 지는 것도 꽃을 잊는 것도 슬프네요.

시간이 지나 그 꽃이

다시 새록새록 피어나길

기다리는

아름다운 추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