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밥 - 허연
세월이 가는 걸 잊고 싶을 때가 있다.
한순간도 어김없이 언제나 나는 세월의 밥이었다.
찍소리 못하고 먹히는 밥.
한순간도 밥이 아닌 적이 없었던
돌아보니 나는 밥으로 슬펐고,
밥으로 기뻤다.
밥 때문에 상처받았고,
밥 때문에 전철에 올랐다.
밥과 사랑을 바꿨고,
밥에 울었다.
그러므로 난 너의 밥이다.
- 시집<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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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나와 함께 먹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무수한 세월 속에 나는 밥을 먹고
그 밥을 벌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마음이 아파 울면서
그 밥을 먹고 살아 왔다.
세월의 품에 안겨서
떠 먹여 주는
밥을 먹고 살아왔다.
또한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밥을 먹고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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