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네모를 향하여 - 최승호

물빛향기 2020. 9. 13. 16:48

네모를 향하여      - 최승호

 

은행 계단 앞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땡볕에 지쳐 축 늘어져 있다

이 여름 도시에선 모두들

얼마나 피곤하게 살아오고 또 죽어 가는지

빌딩 입구의 늙은 수위는

의무를 다하느라 침을 흘리며

눈을 뜬 채로 자면서도 빌딩을 지키고 있다

 

자라나는 빌딩들의

네모난 유리 속에 갇혀

네모 나는 인간의 네모난 사고방식, 그들은

네모난 관 속에 누워서야 비로소

네모를 이해하리라

 

우리들은 네모 속에 던져지는 주사위였지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 시집<고슴도치의 마을>(문학과 지성사, 1985)

 

네모 속에 태어남

네모 속에 살아감

네모 속에 죽어감

네모 속에 영면함

네모에 맞춰 살아가며, 네모를 향하여 행진하는 나,

오늘도 행복한 네모의 삶이 되자!

 

- 김승희 시인의 글 인용함.

 

===> 시를 통해, 우리가 네모 안에 사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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