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밥 - 허연

물빛향기 2020. 9. 12. 21:35

190)  밥      - 허연

 

세월이 가는 걸 잊고 싶을 때가 있다.

한순간도 어김없이 언제나 나는 세월의 밥이었다.

찍소리 못하고 먹히는 밥.

한순간도 밥이 아닌 적이 없었던

 

돌아보니 나는 밥으로 슬펐고,

밥으로 기뻤다.

밥 때문에 상처받았고,

밥 때문에 전철에 올랐다.

 

밥과 사랑을 바꿨고,

밥에 울었다.

그러므로 난 너의 밥이다.

 

  - 시집<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2008)

===

 

세월은 나와 함께 먹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무수한 세월 속에 나는 밥을 먹고

그 밥을 벌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마음이 아파 울면서

그 밥을 먹고 살아 왔다.

세월의 품에 안겨서

떠 먹여 주는

밥을 먹고 살아왔다.

또한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밥을 먹고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