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붙어서다 -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빈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 시집<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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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폐지를 줍어도 보았다.
낮에 다른 일을 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강남일대 차를 가지고 폐지,
고철을 모을 때가 있었다.
한묶음이라도 더 모을려고 골목길을 누비던 날에,
시인처럼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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