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바짝 붙어서다 - 김사인

물빛향기 2020. 8. 24. 21:47

바짝 붙어서다     -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빈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 시집<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 2015)

 

===

 

거리에서 폐지를 줍어도 보았다. 

낮에 다른 일을 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강남일대 차를 가지고 폐지,

고철을 모을 때가 있었다. 

한묶음이라도 더 모을려고 골목길을 누비던 날에,

시인처럼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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