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물빛향기 2019. 12. 2. 21:19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시집<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 지성사, 1989)


===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ㅡ 젊은 청춘은 질투보다는 사랑을 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질투를 하므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또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