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파문 - 권혁웅

물빛향기 2020. 2. 2. 18:58

파문        권혁웅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 서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춰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파문

 

권혁웅 시집<황금 나무 아래서>(문학세계사, 2001)


===  파문 : 물의 파장이 동심원을 형성하면서 둥글게 둥글게 번져가는 일.

어릴 때 물제비(파문)를 만들때,

여름날 소나기 내릴 때,

빗방울이 떨어져 공기 방울을 만들어지는 것을 쳐다 본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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