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겨울 편지 - 안도현

물빛향기 2020. 2. 5. 21:16

겨울 편지            -  안도현


댓잎 위에 눈 쌓이는 동안 나는 술만 마셨다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 술만 마셨다.


거긴 지금도 눈 오니?

여긴 가까스로 그쳤다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 보인다


청둥오리는 청둥오리 발자국을 찍으려고 왁자하게 내려앉고,

족제비는 족제비 발자국을 찍으려고 논둑밑에서 까맣게 눈을 뜨고,

바람은 바람의 발자국을 찍으러 왔다가 저 저수지를 건너갔을 것이다


담배가 떨어져 가게에 갔다 오느라

나도 길에다 할 수 없이 발자국 몇개 찍었다

이 세상에 와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땅바닥에 직고 다니느라

신발은 곤해서 툇마루 아래 잠들었구나

상기도  눈가에 물기 질금거리면서,


눈 그친 아침은, 그래서

이 세상 아닌 곳에다 대고 자꾸 묻고 싶어진다

넌 괜찮니?

넌 괜찮니?


    - 시집<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2001)



===  '땅바닥에 찍고 다니느라 신발은 곤해서 툇마루 아래 잠들었구나'

시인의 글처럼 어릴 때,

눈오면 마냥 뛰어 다니면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 하며 지내던 기억이 난다.

또 다른 발자국을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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