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편지 - 안도현
댓잎 위에 눈 쌓이는 동안 나는 술만 마셨다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 술만 마셨다.
거긴 지금도 눈 오니?
여긴 가까스로 그쳤다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 보인다
청둥오리는 청둥오리 발자국을 찍으려고 왁자하게 내려앉고,
족제비는 족제비 발자국을 찍으려고 논둑밑에서 까맣게 눈을 뜨고,
바람은 바람의 발자국을 찍으러 왔다가 저 저수지를 건너갔을 것이다
담배가 떨어져 가게에 갔다 오느라
나도 길에다 할 수 없이 발자국 몇개 찍었다
이 세상에 와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땅바닥에 직고 다니느라
신발은 곤해서 툇마루 아래 잠들었구나
상기도 눈가에 물기 질금거리면서,
눈 그친 아침은, 그래서
이 세상 아닌 곳에다 대고 자꾸 묻고 싶어진다
넌 괜찮니?
넌 괜찮니?
- 시집<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2001)
=== '땅바닥에 찍고 다니느라 신발은 곤해서 툇마루 아래 잠들었구나'
시인의 글처럼 어릴 때,
눈오면 마냥 뛰어 다니면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 하며 지내던 기억이 난다.
또 다른 발자국을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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