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정든 병 - 허수경

물빛향기 2020. 5. 13. 21:35

정든 병             - 허수경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 시집<혼자가는 먼 집>(문학과 지성사, 1992)

이국에서 만난 고독 하나 키우다. 병이 되고, 시가 되고, 죽음이 되는 = 허수경 '정든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