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숲에 관한 기억 - 나희덕

물빛향기 2020. 8. 16. 17:11

숲에 관한 기억        - 나희덕

 

너는 어떻게 내게 왔던가?

오기는 왔던가?

마른 흙을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빗물 고인 웅덩이처럼?

젖은 나비 날개처럼?

숲을 향해 너와 나란히 걸었던가?

꽃그늘에 입을 맞추었던가?

우리의 열기로 숲은 좀 더 붉어졌던가?

그때 너는 들었는지?

수천 마리 벌들이 일제히 날개 떠는 소리를?

그 황홀한 소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사랑은 소음이라고?

네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가?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

 

 

- 시집<야생사과>(창비, 2009)

 

===

 

숲속에 있으면 편안함이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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