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205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장석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장석주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

다행이라는 말 - 천양희

다행이라는 말 - 천양희 환승역 계단에서 그녀를 보았다 팔다리가 뒤틀려 온전한 곳이 한군데도 없어 보이는 그녀와 등에 업힌 아기 그 앞을 지날 때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돈을 건넨 적도 없다 나의 섣부른 동정에 내가 머뭇거려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그래서 더 그녀와 아기가 맘에 걸렸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늦은 밤 그곳을 지나다 또 그녀를 보았다 놀라운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녀가 바닥에서 먼지를 툭툭 털며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자, 집에 가자 등에 업힌 아기에게 백년을 참다 터진 말처럼 입을 열었다 가슴에 얹혀 있던 돌덩이 하나가 쿵, 내려앉았다 놀라워라! 배신감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비난하고 싶..

농담 - 이문재

110) 농담 -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시집(문학동네, 2004) ===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야! 윈도우 안에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보니 당신 생각이 났어.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야! 바쁘니 나중에 다시 연락할께.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을 만나면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면 진짜로 사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