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205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 고진하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 고진하 그대가 불행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대의 삶이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그대의 존재가 이루지 못한 욕망의 진흙탕일 때, 불면으로 잠 못 이루는 그대의 밤이 사랑의 그믐일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 까닭 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 불평과 원망이 마른풀처럼 잠들었을 때, 신발 끈을 매고 길 떠날 준비를 하라. 생(生)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을 여윈 순결한 사랑이 아침 노을처럼 곱게 피어 오를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지니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온 몸을 감쌀 때 그대의 길을 떠나라. - 고진하 시집(문학동네, 2015..

담쟁이 - 도종환

70)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시집(창비, 1993) / 시선집(시인생각, 2012) 담쟁이 - 김진래 저 벽을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할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는 곳,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곳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