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20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 정호승 // 산 너머 저쪽 - 칼 붓세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ㅡ 정호승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수라(修羅) - 백석(白石)

수라(修羅) - 백석(白石)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 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

빈집 - 기형도

60)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시집(문학과 지성사, 1989) === "결혼이란 빈 들판에 지은 집 그 집에 누가 갇혔을까?" "결혼이란 빈 들판에 스스로 집을 짓고 스스로 갇히는 일이다. - 정일근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젊었을 때, 짧은 연애와 사랑을 잃고 나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빈집)의 문을 잠그고 말았지요. 사랑하는 님과 함께했던 짧았던 밤, 겨울 안개, 촛불, 종이, 눈물이 옛 추억이 되어, 괴롭고, 고통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