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205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 문태준

31)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 문태준 오늘은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길을 가다 우연히 갈대숲 사이 개개비의 둥지를 보았네 그대여, 나의 못다 한 말은 이 외곽의 둥지처럼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맞고 있으리 둥지에는 두어 개 부드럽고 말갛고 따뜻한 새알이 있으리 나의 가슴을 열어젖히면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나의 말은 막 껍질을 깨치고 나올 듯 작디작은 심장으로 뛰고 있으리 - 시집(문학과 지성사, 2008) ===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은? 하고 싶은 말을 감추고 있는 사람의 심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이다. 나는 미루어 놓은 말은 없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또한 미루어 놓은 채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시. 다음에는 없을 수 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3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사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시전집(창비, 1987)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나는 나타샤를..